요한복음 강해 (제65강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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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,763회 작성일 22-02-02 09:33본문
<요한복음 11장>
3. 아는 신앙에서 믿는 신앙으로... (요 11:17-27)
(요 11:17-19)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
★ “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”는 말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살릴 수 없음을
의미한다.
· 유대 지방은 기온이 높기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그 날 당일이나 늦어도 삼일 이내에 매장하였다.
(행 5:5-6)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 하더라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
(행 5:9-10)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
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하니 곧 그가
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
그의 남편 곁에 장사하니
· “나흘”을 강조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사로가 살 수 있었음을 나타내기 위함이다.
· 베다니는 예루살렘까지 3km도 안 되는 가까운 거리였기에 나사로를 아는 지역 주민들이 많이
올 수가 있었다.
(요 11:20)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
★ 두 자매의 성격 차이를 볼 수가 있다. 마르다는 매우 적극적이고 활동적이어서 매사에 앞장을 서는 반면에 마리아는 사색적이고 헌신적이며 기다리는 성격을 가졌다. 물론 마르다가 상주
였기에 예수님을 맞이하려고 나간 의미도 있다.
(요 11:21-22)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
★ 마르다는 “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않았을 것”이라고 한 것은 원망과
불평의 소리가 아니다. 주님이 계셨더라면 상황이 달랐을 거라는 아쉬움의 소리이다.
· “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” 이 말 속에 마르다의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며 절대적인 신앙의 고백이 들어 있다. 나사로가
죽었어도 “이제라도” 하나님의 아들 되시는 예수님이 구하시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.
(요 11:23)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
★ 너의 오빠가 다시 살아나리라고 예수님은 희망의 말씀을 하신 것이다. 그러나 마르다는 이
놀라운 말씀에 받아들일 만한 믿음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.
(요 11:24)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
★ 마르다가 생각하건데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.
그래서 지금 오빠가 살아난다는 생각은 못하고 “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안다” 고 했다. 마르다는 부활 그 자체는 의심 않고 믿었으나 지금 예수님이 그의 오빠를 살리는 것은 전혀 생각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. 장차 미래에 자신이 죽은 오빠에게 갈 소망은 있었으나 지금 예수님을 통해 오빠가 자신에게 올 것이라는 소망은 전혀 없었다.
· 마르다는 미래의 부활을 교리적으로는 알고 있었으나 현재의 부활은 믿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.
(요 11:25-26)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
★ 예수님은 1) 부활이시요 2) 생명이시다 3)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산다 4) 무릇 살아서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. “이것을 네가 믿느냐?”
· 이 말씀은 부활과 생명이 예수님 안에 있음을 의미한다. 예수님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이기에
예수 믿는 자도 그 분 안에서 부활과 생명을 얻는 것이다.
· 25절의 말씀이 나사로처럼 죽은 성도들을 가리킨다면 26절의 말씀은 지금 살아 있는 성도들을 가리키는 말씀이다.
· 예수님은 “압니다”로 대답한 마르다에게 “믿습니다”로 대답할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다.
(요 11:22)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
· 우리도 아는 지식적인 신앙에서 “믿습니다”의 신앙으로 바뀌어야 한다.
(요 11:27)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
★ 베드로의 고백을 생각나게 하는 답변이다. 마르다는 아는 지식의 신앙에서 믿는 체험의 신앙으로 바뀌었다.
★ 부활의 믿음이 있는 사람은 1)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. 2) 이 땅의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. 3) 영생(천국)에 대한 희망이 있다. 4) 욕심 없이 살아가게 된다.
(고후 5:1)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
(계 21:1-4)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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